https://youtu.be/bo03ShfJL2c?si=15VXC2thAtaFFSbw
출처 : 진쏠미 유튜브
이 전에 끌어당김 법칙의 포인트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 해탈한 현자의 마음가짐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무욕하고 초연한 상태가 되었음에도, 이 마인드가 없다면 다 끌어당긴 것도 받아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것만 안다면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에는 그 마인드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1. 왜 수 많은 종교인들은 실제로 부유하지 않을까?
모든 것을 해탈하고 현자의 마음가짐을 통달한 수 많은 종교인과 영성인들은 왜 부유하지 못했을까요?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경지를 이룬 많은 종교인, 영성인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부유한 사람은 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 교리에서도 '모든 것을 다 내려 놔야지만 비로소 그제서야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진정으로 깨달은 불자들은 오히려 그 무엇도 소유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끌어당길 수 있는 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래 서술하는 '개'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렇습니다.
2. 모든 것을 덥썩 받는 '개'같은 마인드
현자의 마음상태로 내가 원하는 것을 끌어당김에 성공했습니다. 내가 '이미' 모든 것을 이루고 가졌다고 생각하자, 나의 무의식은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주고자 노력합니다. 껍데기뿐에 불과한 나의 육체가 잠을 자고 있는 밤중에도 나의 무의식은 밤낮없이 내가 생각하는 것을 가져다주고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무의식이 나를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서 끌어당겨 온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주저없이 받아들이는 '개'같은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쓰니 조금 비속어 같아서 다시 설명하자면, 고구마 먹는 강아지와 같은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주로 종교인들에게는 부와 돈이 금기시 되고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마세라티를 타는 스님, 페라리를 모는 목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부를 탐하는 스님들을 지칭하는 단어 중 속된 말로 땡중이라고 일컫는 단어까지 존재합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종교인들은 물질 적인 것을 원하고 잘 받는 잠재의식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즉 무언가를 받고자 한다면 그것을 거리낌 없이 '잘 받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감사함은 가지되 무엇인가를 부담스러워 하거나 사양하거나 '내가 이것을 받아도 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은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의문을 가지는 순간 나의 무의식은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튕겨내려고 할 것입니다. 주인에게 고구마를 받아먹는 강아지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강아지는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고구마를 빨리 달라고 하거나 더 먹으려고 할 뿐입니다.
3. 무욕함과 잘 받는 잠재의식은 양립가능한가?
이미 모든 것을 가져서 해탈한 현자의 마음가짐을 가지라면서, 무엇이든 잘 받아먹는 강아지와 같이 생각하라고? 모순되지 않나 생각이 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미 인기가 많은 연예인, 많은 부를 이룬 기업가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이미 차고 넘치는 인기와 부를 소유했지만, 누군가가 추가로 돈과 애정을 준다면 거리낌 없이 그것들을 받고자할 겁니다. '이미' 넘치도록 가졌기 때문에 갈망하지는 않지만, '이미' 가진 것이 더 추가된다고 하여 이를 막지 않습니다. 더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마인드입니다.
예를 들어 무언 가를 생각할 때 '일 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이성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무의식은 그 현재 상태를 인식할 겁니다. 아 지금은 돈이 없구나, 아 지금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는 상황이구나라고 결핍된 현재 상태를 인식하고 그 상황을 끌어당기려 할 것입니다. 이미 나에게 차고 넘쳐서 갈망하지는 않지만 더 주면 사양대신 땡큐라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